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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리뷰 — 다 보고 나니 제목의 괄호가 무섭게 남았다

ekyu 2026. 9. 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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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리뷰 — 다 보고 나니 제목의 괄호가 무섭게 남았다

※ 영화의 주요 설정과 일부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말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들)’이었다.

왜 그냥 <암살자들>이 아니라 <암살자(들)>일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꽤 작위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든 것 중 하나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암살자인가.

총을 쏜 사람인가.
그 사람을 움직인 사람인가.
사건을 덮은 사람인가.
진실을 알고도 침묵한 사람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괄호 안에 들어간 한 글자가 처음보다 훨씬 무겁게 보인다.

내 기준에서는 5점 만점에 5점.

최근 본 한국 영화 가운데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본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긴장된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영부인 저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고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각각 경찰 철구, 사회부장 재환, 신입 기자 영일을 연기한다. 세 사람은 실존 사건을 그대로 재연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들로, 각자의 위치에서 사건의 의문을 따라간다. 영화는 2026년 9월 23일 개봉했다.

이런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아마 관객 대부분이 사건의 큰 틀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아닐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고 있고, 누가 체포됐는지도 안다.

그런데도 긴장된다.

이게 좋았다.

영화는 억지 반전을 숨겨뒀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식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알려진 사건 주변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작은 모순 하나가 생기고, 그걸 따라가면 또 다른 이상한 부분이 나온다.

“어?”

하고 한 번 걸린다.

조금 지나면 또 하나 걸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진다.

영화가 관객에게 계속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의심하는 방법을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유해진이 이렇게 조용한데도 무서울 수 있구나

유해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 영화에서 유해진은 굳이 큰 연기를 하지 않는다.

평소 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능청스러움도 거의 없다. 말도 많지 않고 표정도 크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철구는 사건 현장 가까이에 있었던 경찰이다.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일반 사람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말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 애매한 위치가 유해진과 정말 잘 맞았다.

무엇인가를 봤는데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

확신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얼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알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알아버리는 얼굴.

대사가 아니라 표정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꽤 많았다.

유해진을 수많은 영화에서 봤는데도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박해일은 그냥 그 시대의 기자처럼 보였다

박해일의 재환도 좋았다.

신념에 불타는 기자라고 해서 처음부터 정의를 외치거나 책상을 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엇을 기사로 쓸 수 있는지 알고 있고,

무엇을 쓰면 안 되는지도 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알았으면 그냥 쓰면 되잖아.”

그런데 영화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던 시대를 보여준다.

허진호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당시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 책, 논문과 해외 자료 등을 조사했고, 사건의 범인을 새롭게 단정하기보다는 폭력이 지배했던 시대 속에서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재환이라는 인물이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용감한 기자와 비겁한 기자를 딱 나눠놓지 않는다.

사람은 대부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겁도 나고, 가족도 생각나고, 직장도 생각나는데,

그래도 이것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

박해일이 그 미묘한 지점을 정말 잘 잡는다.


그리고 이민호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배우는 이민호였다.

유해진과 박해일 사이에서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꽤 잘 어울린다.

영일은 아직 기자 생활에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한 번 멈출 때 혼자 한 발 더 들어간다.

위험한지도 모르고 들어가는 순간도 있고, 알고도 들어가는 순간도 있다.

이 캐릭터가 없었다면 영화 전체가 너무 무거웠을 것 같다.

철구와 재환이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영일은 아직 “왜 안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이다.

그 차이가 영화에 속도를 만든다.

세 배우가 한 팀처럼 붙어 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좋았다.

경찰은 경찰의 자리에서 보고,

사회부장은 사회부장의 자리에서 보고,

막내 기자는 또 자기 자리에서 본다.

그러다가 각자가 발견한 조각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이 방식 때문에 같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이 영화는 총격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

영화에는 총이 등장한다.

당연히 사건의 중심에도 총성이 있다.

그런데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총소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입을 다무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봤는데 못 봤다고 한다.

누군가는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질문을 듣자마자 표정부터 변한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그 사람들이 특별히 악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면 안 되는 시대였고,

잘못 말했다가는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시대였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입을 막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굳이 누가 막지 않아도 스스로 멈추게 된다.

여기까지만 알아보자.

이건 묻지 말자.

이 사람에게는 전화하지 말자.

기사에는 이 정도만 쓰자.

그렇게 한 사람씩 선을 긋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거대한 음모를 거창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사람들이 조금씩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게 훨씬 현실적으로 무서웠다.


허진호 감독 영화라는 게 중간중간 느껴진다

소재만 보면 굉장히 거칠고 강한 정치 스릴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암살자(들)>은 생각보다 차분하다.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데도 영화가 흥분하지 않는다.

카메라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다.

누가 악인인지 크게 표시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보는 시간이 길다.

누군가가 사건을 설명하는 장면보다 그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더 기억나는 순간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허진호 감독 영화라는 느낌이 난다.

큰 사건을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을 보고 있다.

특히 철구와 재환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그렇다.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연히 이상한 걸 봤고,

조금 더 알아봤고,

그러다 돌아가기 어려운 곳까지 간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꽤 영리하게 움직인다

이런 영화는 조금만 잘못 만들면 위험하다.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 영화적 상상력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관객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살자(들)> 역시 실제 영부인 저격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철구·재환·영일 등 주요 추적 인물들은 가상 인물이다. 감독 역시 자료 조사 뒤 사건에 새로운 역사적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 사건을 바라보고 의문을 품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오히려 실제 기록이 궁금해졌다.

영화가 정답을 알려줘서가 아니다.

반대다.

영화가 정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보고 싶어졌다.

이 차이가 꽤 크다.

역사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역할 중 하나가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고,

“진짜는 어땠지?”

하고 검색해보게 만드는 것.


130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두 시간이 넘어가면 보기 전부터 조금 부담스럽다.

특히 대사가 많고 정치적인 배경까지 있는 영화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암살자(들)>은 이상하게 길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억지로 속도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 궁금하다.

이 사람은 뭘 알고 있는지.

왜 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아까 나온 장면은 무슨 의미였는지.

큰 사건보다 작은 의문을 계속 이어붙인다.

그래서 집중력이 잘 끊기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다음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야

“생각보다 꽤 길었네.”

싶었다.

내게는 좋은 영화에서 자주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말까지 보고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다시 제목이다.

암살자(들).

영화 보기 전과 보고 난 뒤에 제목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암살자는 한 명인가.

정말 방아쇠를 당긴 사람만 암살자인가.

명령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실을 알고 숨긴 사람이 있다면?

진실을 없애버린 사람이 있다면?

어디까지 괄호 안에 넣어야 할까.

영화가 이 질문에 답을 써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만약 마지막에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진실은 이것입니다”

라고 끝냈다면 오히려 평범한 영화가 됐을 것 같다.

대신 괄호 하나를 남긴다.

그리고 극장을 나온 뒤에도 그 괄호가 계속 생각난다.


5점을 준 이유

별 다섯 개를 주는 영화라고 해서 모든 장면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5점을 주는 영화는 조금 다르다.

보는 동안 몰입했고,

배우들이 좋았고,

끝까지 궁금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났고,

결국 실제 사건까지 다시 찾아보게 됐다.

<암살자(들)>은 그게 전부 있었다.

특히 좋았던 건 이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빌려와 단순히 “숨겨진 진실을 폭로한다”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사람들이다.

봤던 사람.

알게 된 사람.

말하지 못했던 사람.

그래도 끝까지 확인하려 했던 사람.

그래서 사건보다 사람들의 얼굴이 더 오래 기억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만 남는다.

내가 저 시대에 있었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5점이다.

★★★★★ 5/5

최근 한국 영화 중에서 누군가에게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 뭐 있어?”라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찾아보지 않고 먼저 보는 쪽을 권하고 싶다.

이 영화는 무엇을 알고 보는 것보다,

보면서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할 때 훨씬 재미있다.

<암살자(들)>이라는 제목의 괄호가 왜 필요한지 직접 확인하는 것.

그게 이 영화를 보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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