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우유》 리뷰 — 사람 마음이 그렇게 깔끔하게 나뉠 리가 없지

책 제목만 보면 꽤 순하다.
빵과 우유.
아침 식탁 같은 제목이고, 어쩐지 따뜻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몇 편 읽다 보면 제목에서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꽤 멀어진다.
사람들이 계속 불편해한다.
자기가 선택한 삶이 정말 원하는 삶인지 모르겠고, 좋은 일을 한다는 사람을 보면서도 어딘가 미심쩍고, 싫다고 말하면서 정작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에 계속 나온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한은형의 《빵과 우유》는 2015년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이후 11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이다. 총 일곱 편이 실려 있고, 비거니즘과 종교, 가족과 모성, 재한 동포의 삶처럼 서로 꽤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2026년 9월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면 각각의 소재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기가 애매하다
첫 번째 작품인 〈식물성 관상〉부터 그렇다.
비건 식당이 등장한다.
말만 들으면 가치관이 분명한 공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식당은 비건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그걸 또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다.
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진정성 없는 게 이 시대의 진정성이라고 해도 되겠다.”
웃기면서도 묘하게 기분 나쁜 말이다.
말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요즘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가치인가, 이미지인가.
정말 비건이어서 비건 식당을 운영하는 건지, 아니면 비건이라는 이미지를 파는 건지.
그런데 소설이 여기서 친절하게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이 사람이 위선적이라고 딱 표시해놓고 끝내는 식이 아니다. 오히려 읽는 사람 쪽에서 계속 판단을 바꾸게 만든다. 출판사 역시 이 작품을 비건을 표방하는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이미지 소비와 차별을 다룬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 애매함이 좋았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완전히 좋은 사람도 드물고, 작정하고 나쁜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사이가 훨씬 넓다.
이상한 스님을 보면서 드는 이상한 감정
〈절담〉도 기억에 남았다.
소설 속 화자는 유명한 사찰 음식의 대가가 된 승려를 만난다.
그런데 예전에 그 절을 방문했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이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먹기 힘든 밥을 내놓던 곳이 유명한 사찰 음식의 공간이 되었고, 스님 역시 어느새 마케팅에 능한 유명인이 되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돈 많은 스님을 비판하는 이야기로 간단히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성공하면 안 되는가.
승려는 좋은 차를 타면 안 되는가.
마케팅을 잘하면 수행자의 진정성이 사라지는가.
머리로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사람을 앞에 놓으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도 읽으면서 몇 번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싶다가도,
“그렇다고 이 사람이 잘못했다고 할 수 있나?”
싶어진다.
딱 그런 순간을 잘 잡는다.
표제작 《빵과 우유》는 오히려 가장 거칠다
제목이 된 〈빵과 우유〉에는 미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미구는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는 삶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가족을 완전히 버리고 떠나지는 못한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그 답답함은 식탁과 음식, 집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과 묘하게 겹친다.
이 작품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미구가 정말 망가뜨리고 싶은 건 음식이 아니라 가정 자체였다는 대목이다.
남편과 아이가 싫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정을 사랑하면서도 가정이라는 형태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엄마라는 역할까지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가정주부의 삶이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감정은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해진다.
“가족은 사랑하지만 가족에게서 도망가고 싶다.”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빵과 우유〉를 고른 게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식탁이 있는데, 그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마음속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모순’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떠올랐다
책에는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식물성 관상〉
〈절담〉
〈빵과 우유〉
〈피서〉
〈N서울타워〉
〈스위스식 농담〉
〈동백 정원〉
서로 소재도 다르고 등장인물도 다르다.
그런데 읽다 보면 계속 비슷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싫은데 떠나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끌린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다.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면서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보통 사람을 설명할 때는 하나를 고르게 된다.
좋은 엄마.
위선적인 사람.
외로운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런데 실제 사람은 그런 식으로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정리되지 않는 부분을 계속 건드린다.
출판사 소개에서 이 소설집을 설명하면서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책을 가장 짧게 설명한다면 나도 결국 그 말을 고를 것 같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는 그렇게 거창한 단어보다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 원래 이렇지.
그래서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기가 조금 어려워진다
소설을 읽을 때 꼭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좋았다.
누가 옳은지도 명확하지 않고,
누가 나쁜지도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인물에게는 꽤 짜증이 나다가도 조금 지나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알게 된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도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나면 이상하게 욕하기가 조금 어려워질 때가 있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건데,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과정까지 알고 나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한은형이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인물들을 두고 미숙하고 결점이 있지만 자신이 편애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힌 것도 그래서 이해됐다. 작가는 그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 표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빵과 우유》라는 평범한 제목이 나중에는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제목이 왜 《빵과 우유》인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표제작 제목을 소설집 이름으로 사용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인다.
빵과 우유는 너무 평범하다.
같이 놓여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설명도 필요 없다.
가정도 비슷하다.
부부가 있고 아이가 있고 식탁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람 마음은 그렇게 가지런하지 않다.
사랑하면서 벗어나고 싶고,
믿으면서 의심하고,
원하면서 동시에 싫어한다.
그걸 굳이 하나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소설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인물보다 이상하게 마음의 앞뒤가 맞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았다.
아마 한동안은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은 왜 저래?”
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번 정도 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정말 저 사람 마음이 하나뿐일까.
《빵과 우유》는 그런 책이었다.
사람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사람을 너무 빨리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책.
그 정도 거리를 남겨놓는 게 마음에 들었다.
책 정보
- 제목: 《빵과 우유》
- 저자: 한은형
- 출판사: 문학동네
- 출간: 2026년 9월 28일
- 분량: 296쪽
- 수록작: 7편
한 줄 감상
사람 마음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가짜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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